정보화마을 순천 낙안배이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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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곡(李谷)리 이곡(李谷)마을

    1600년경 구씨(具氏)와 최씨(崔氏)가 마을을 형성하여 느리실과 이만지로 불리어 오다가 1908년경부터 세곡(世谷)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암리, 이동리, 세곡리의 일부와 동하면 신기리 일부를 합해서 이곡리라 하고 동초면에 편입되었다가 1929년에 낙안면으로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마을이름 유래는 과일이 잘된 곳이라 하여 느리실이라 하였고, 이만가구가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만지라 하였으며 1914년에는 이동(李洞)과 세곡(世谷)의 이름을 따서 이곡리(李谷里)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특산물로는 배를 들 수 있는데 이곡 마을의 배는 60 여년전부터 재배하고 있는데 배 맛이 유난히 좋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곡(李谷)리 노암(路岩)마을

    1913년경 진주강씨(晋州姜氏)와 김해김씨(金海金氏)에 의해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마을이름은 해오라기가 바위에 앉아있는 형상이라 하여 노암(鷺岩)이라 부르게 되었다. 포도는 이마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특산물이다. 그 외에도 배와 감 등이 재배되고 있다.



    옥산(玉山)리 옥산(玉山)마을

    이 마을은 본래 낙안군 읍내면 지역으로 옥이 났다고 하는 산(옥산)밑에 있다하여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1908년에 순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동(書洞), 녹천(鹿川), 온야(溫夜), 덕천(德川), 사포리(沙浦里)의 각 일부와 보성군 고상면 지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낙안면에 편입되었다. 특히 옥산 주위에는 지금도 시누대가 생장하고 있는데 질이 좋아서 옛날에는 화살촉으로 이용했고 낙안팔경(樂安八景)의 옥산총죽(玉山叢竹)으로 유명하다.



    평촌(平村)리 평촌(平村)마을

    서기 660년경인 백제 의자왕때 부여서씨, 경주김씨, 서산진씨들에 의하여 개척되고 촌명은 진천리라 불렀으나 1694년 조선조 숙종대에 이르러 평촌리라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개칭 연유는 조계산 정남방(正南方)이 난시(亂時)에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평화스런 마을명칭을 골라 평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촌(校村)리 교촌(校村)마을

    1280년 무렵인 고려 충렬왕때 경주최씨. 광산김씨들에 의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름은 금계동으로 불러오다가 1658년 효종 9년에 향교(鄕校)를 마을 뒷동산으로 이전하면서부터 교촌(校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은 동남방형으로 광활한 낙안 평야 안에 둥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신기(新基)리 신기(新基)마을

    마을 형성 년대는 조선조 효종때로 죽산안씨(竹山安氏) 지윤(之尹)이 보성 우산에서 생계의 어려움을 면하기 위하여 수리시설이 안전하고 넓은 평야지대인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함으로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정착 당시는 지금의 마을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마을 재궁(齋宮)에 마을을 이루었으나 좀더 넓고 농경지가 가까운 새로운 터를 찾아 마을을 이루게되어 신기(新基)라 불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기(新基)리 동림(東林)마을

    동림마을은 1680년경 조선조 숙종 6년에 창원정씨 세양(世亮)이 수(數) 미상(未詳)의 하인을 거느리고 구기(舊基)와 신기(新基)마을 가운데에 있는 지금의 마을에 터를 닦고 마을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개촌 당시는 순천군 동하면에 속했으나 1914년에 순천군 동초면 동림으로 개칭되었고 1929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낙안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기(新基)리 구기(舊基)마을

    구기마을은 지금부터 390여년전 진주강씨(晋州姜氏)의 명암(明岩)의 13대조가 제석산(帝釋山) 중턱에 마을을 이루어 5∼6호가 거주하다가 강명암(姜明岩)의 12대조가  좀더 낮은 곳을 찾던 중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형이면 식량이 떨어지지 않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풍수설에 의해 지금의 위치인 구기(舊基)에 내려와 정착케 되었다. 개촌시에는 강씨(姜氏)가 마을을 이루었다하여 강촌(姜村)이라 불렀고 서기 192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낙안면에 편입되었고 옛터라는 의미로 구기(舊基)라 하였다고 한다.



    용능(龍陵)리 용능(龍陵)마을

    1690년경 수원백씨(水原白氏)들에 의하여 개척되었고 마을이름은 취용(醉龍)리로 불러오다가 1914년 용능(龍陵)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개촌 당시 마을형태가 용이 모아든 형상과 같다하여 취용(醉龍)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두능(杜陵)리와 운동(雲洞)리, 취용(醉龍)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능(龍陵)리라 하였다. 마을은 본래 낙안군 동상면 지역이었는데 1908년 순천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에는 동초면에 편입되었다가 1929년 낙안면에 편입되었다. 용능(龍陵)리는 용능(龍陵)과 두능(杜陵)마을로 구성되었으며 마을 동남쪽에는 제석산이, 동편에는 "우렁" 같이 생겼다는 우렁재가 있다. 이 마을 특산물로는 그 맛과 질이 뛰어난 복숭아가 유명하다.



    내운(內雲)리 내동(內洞)마을

    1504년경(연산군시대) 갑자사화때 제주목사 광주이씨(廣州李氏) 을부(乙富)가 귀양살이 오면서 설촌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뒤편에는 해발 591m의 오봉산이 버티고 있으며 마을 앞의 넓다란 내운평야는 마을주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시설원예 단지가 집단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내운(內雲)리 심내(深內)마을

    광해군 말기 1620년경, 연일정씨(延日鄭氏) 익(益)이 한양에서 낙향하여 설촌하였다 한다. 마을 명칭은 구전(口傳)에 의하면 감나무골 이라고 하였는데 서당(書堂)이 들어서면서 서당골 이라고 하다가 그후 심내(深內)라 불렀는데 그 연유는 수목이 쌓인 계곡 깊숙이 자리하였다 하여 심내라 하였다고 한다. 해발 591m의 오봉산이 마을을 보호하듯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고 옥과 돈이 샘솟듯 한다는 돈옥천이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청정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천지개벽 당시 바닷물이 있어 배가 정박했다는 배재고개 전설이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내운(內雲)리 운동(雲洞)마을<

    광해군 초인 1610년경 광주이씨(廣州李氏) 선간(善間)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郡資監正)이 개촌하여 웃돔상촌이라 불렀으나 중간에 낙화정이라 불리우다가 운동(雲洞)이라 부르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연유는 마을주변의 수려한 산수풍경 속에 신선적인 마음의 소유자만이 살 수 있다 하여 운동(雲洞)이라 불렀다.

    마을유래 (1985.10.1 발행한 승주군사에서 발췌)